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잉베이 말름스틴 (문단 편집) == 개요 ==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의 [[헤비메탈]] [[기타리스트]]. [[1963년]] [[6월 30일]] 출생. 하드록/헤비메탈 분야에서 기타 연주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만한 혁명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 기타리스트는 몇 안되는데, [[지미 헨드릭스]], [[에디 밴 헤일런]]. '''잉베이 말름스틴'''이 그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실력의 척도는 천상계 원탑 레벨중 하나로 꼽힐 정도.. [[풀네임]]은 [[영어]]식으로 잉베이 조핸 말름스틴(Yngwie Johann Malmsteen, /ˈɪŋveɪ ˈmɑːlmstiːn/).[* 영어의 L 발음은 초성을 제외한 자리에서는 설측 치경 연구개 접근음(또는 설측 연구개 접근음)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실제 Malmsteen의 영어식 발음을 들어보면 '''마음스틴'''에 가깝게 들린다. [[필름]]의 영어식 발음이 '''피음'''과 가깝게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 [[스웨덴어]]식으로 '라르스 요한 윙베 란네르베크(Lars Johan Yngve Lannerbäck)'. '잉베이(Yngwie)'라는 이름은 스웨덴어 이름 윙베(Yngve)를 영어식으로 바꾼 이름이고, '말름스틴(Malmsteen)'이라는 [[성씨]]는 모친의 성씨였던 말름스텐(Malmsten)에서 따왔다.[* 스웨덴어에서도 영어식에 가까운 잉베이~잉비 말름스틴으로 발음한다. [[https://ko.forvo.com/word/yngwie_malmsteen]].] 그런데 국내에는 영어 발음을 대강 추측해서 옮긴 '''잉위 맘스틴'''이라는 잘못된 표기로 오랜 기간 통용되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이 통용 표기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원발음에 가까운 '''잉베이 말름스틴'''이라는 표기로 정착되고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윙베 요한 말름스텐'을 표준 표기로 정하고, 영어식으론 문서명과 같은 '잉베이 말름스틴'을 제시했다(2013년 4월 12일 진행 정부ㆍ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 2013년도 제8차 실무소위원회 심의).] 과거 그가 방한 기념으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때, 본인에게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면 되냐고 물어봤더니 직접 '잉베이'라고 불러달라고 답했다.[* 그 외 인터뷰 영상을 보더라도 영어식에 가까운 '잉베이 (제이) 말름스틴'이라는 발음을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https://youtu.be/XSYqrUp3p9w?t=43|관련 영상]].] [[헤비메탈]] [[기타]]계에 [[클래식(음악)|클래식]]적인 연주법과 [[작곡]] 방법을 대거 도입하고, 스윕 피킹 및 온갖 고난도 [[속주#s-2|속주]] [[테크닉]]을 선보여 [[헤비메탈]]과 [[기타]] 연주에 '''혁명'''을 일으킨 인물.[* 그 이전까진 헤비메탈/하드 락 기타리스트들은 블루스 기반으로 한 스타일이었고, 기타에 클래식을 처음 도입한 건 딥 퍼플의 리치 블랙모어였고 그걸 완성시킨 인물이 잉베이 말름스틴이다.] 피킹의 터치감과 정확성/안정감이 지구상에서 최고 라인 중 한 명으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그 정도로 잉베이의 연주 난이도는 매우 어렵고 힘들다. 기본 음계가 클래식 선율인데다가 빠른 음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은 물론 모든 음을 매끄럽고 부드럽게 표현하기에 엄두조차 안나는 것. 최상급 레벨을 지향한다면 거쳐야 할 관문 중 하나. 오버드라이브나 디스토션으로 가득 메꿔놓고 갈기는 기초가 안 잡힌 플레이어들에게는 그의 한 구절도 흉내를 못낼 정도... 이것을 테스트 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과거 '''레슨''' 영상 "Yngwie Malmsteen REH Video Hot Licks"에 첫 부분부터 따라해보면 알 수 있다. --코드와 스트로크, 메이저 스케일 배우고 실용음악학원 졸업하는 보통의 취미생들은 호기롭게 독학하려다 지혼자만 할 수 있는거 가르쳐 준다고 약파는거 아닌가 라고 할정도의 레벨이다.-- [youtube(D4OxW_0qqv8)] 대표곡 중 하나로 꼽히는 Far Beyond The Sun 연주 영상. 또한 [[바로크 메탈]][* 바로크 메탈이라는 표기는 잘못됐다. 일본에서 파워 메탈을 편의상 멜로딕 스피드 메탈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예. 단 바로크 메탈이라는 표현은 한국에서만 잘못 사용되고 있다. 당시 리스너들이 이것을 바로크 음악과 비슷하다고 표현해버려 이게 그대로 표현이 들어와 정착한 사례. 정확한 표기는 [[네오 클래시컬 메탈]]이라고 부른다. 다만 [[파가니니]], [[리스트]]나 [[쇼팽]] 등의 영향이 큰 다른 록커들과 달리 잉베이의 경우는 [[바흐]]의 영향이 워낙 두드러지므로 바로크라고 해도 크게 틀릴 건 없다. 뭐 바흐빠로서는 [[존 로드]]가 대선배이지만]([[클래식(음악)|클래식]]적 선율에 속주 [[기타]] 연주를 중요시하는 장르)을 [[헤비메탈]]계의 주요 장르로 부각시키고 발전시킨 이 분야의 시조격인 인물이다. 또한 현대 속주 기타의 계보를 올라가면 이 사람 없이는 대화가 성립이 안 될 정도. 그러한 공적 때문에 80년대 뿐만 아니라 [[록 음악]]/[[헤비메탈]] 장르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있는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추앙받고 전세계적으로 그를 숭배하는 엄청난 [[팬]]과 추종 [[기타리스트]]들이 있다. 하지만 또 그 때문에 그런 팬들만큼 안티와 까가 많은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물론 이건 후에 거론될 본인의 성격이 자초한 것도 있다. 80년대 그의 엄청난 [[속주]] 연주는 당시엔 그야말로 얼이 빠질 정도로 충격적이라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켜 그를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 [[기타]]의 신으로 추종하는 수많은 [[팬]]들을 만들었다. 특히 당시 하드 록의 테크닉과 속도감에 굶주려있던 [[일본]]과 그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었던 [[대한민국]] 메탈헤드 사이에서는 [[서양]]에 비교해도 넘사벽일 수준으로 그를 추앙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기타리스트들의 테크닉이 극도로 상향평준화된 현재에 와서는 기타 잘 친다는 사람--이라 쓰고 기창이라고 읽는다--이면 잉베이 말름스틴 곡을 어느정도 흉내내는게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속주였다. 솔로 데뷔 앨범 '[[Rising Force]]'가 나왔을 때 [[리치 블랙모어]]([[Highway Star]]의 그 사람이!)는 ''어떤 할일없는 놈이 레코드를 빨리 돌리는 장난을 한줄 알았다"는 소감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당시의 현역 기타리스트들 중에는 '이건 불가능한 연주다. 페이크다.'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 [[록 음악]]/[[헤비메탈]] [[기타리스트]]들은 얼마나 빨리 [[속주]]를 할 수 있는가로 실력을 판정받기도 할 정도였다. 마치 1970년대 기타리스트들에게 [[Highway Star]]가 처음 발표 되었을 때 만큼의 충격을 1984년에 다시 일으킨 것. [[토니 매칼파인]], [[크리스 임펠리테리]], [[비니 무어]], [[마이클 안젤로 바티오]], ~~[[폴 길버트]]~~[* 폴 길버트는 극한의 테크니션으로서 잉베이와 비슷한 이유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다만 폴 길버트를 예시로 드는 것은 좀 어폐가 있는데, 84년 당시 길버트는 이미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긴 했지만 아직 기타리스트로서 성장하고 있던 18세 소년이었다."내로라하는 기타리스트"라기보단, "무시무시한 유망주" 정도 위치. 이해에 GIT 입학, 이듬해에 동기들과 함께 레이서 엑스를 결성하면서 성장했으니, 라이징 포스 발매 당시 완성된 기량을 갖고 있던 잉베이에게 상대가 안되는 건 당연하다. 실제로 길버트는 잉베이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저때 충격을 받은후("It lit a fire under me"라고 표현) 속주를 편하게 하기 위해 피크를 잡는 법도 바꿨다. 잉베이의 데뷔에 자극받아 실력을 키우고 우리가 아는 "그 폴 길버트"가 된 거니, 잉베이 데뷔 당시에 상대가 안됐다는 건 당연한 소리. 전성기 기준 잉베이와 길버트는 극강의 테크니션이란 과 속주달인이란 점이 비슷할 뿐 정확한 스타일도 다르고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는게 의미가 없다. .] 등등의 내로라하는 [[기타리스트]]들 조차 이때는 잉베이 앞에선 명함도 못내밀 수준이었다. 속주를 딱히 내세우지 않아도 웬만한 [[기타리스트]]면 속주를 다 할 수 있지만, 이 중에서도 잉베이는 속주에 고유한 개성을 넣었다는 점이 독창적. 특히 [[일본]]의 어설픈 [[빠]]들은 그를 [[게리 무어]], [[에디 밴 헤일런]]과 함께 80년대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얘기하기도 하고[* 원래는 마이켈 솅커. 잉베이의 등장 이후에 바뀌어 들어갔다. 또한 잉베이 빼고는 매번 바뀐다. [[조지 린치]]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음.], 더 오버한 멍청이들은 [[지미 헨드릭스]], [[에디 밴 헤일런]], 잉베이 말름스틴을 세계 3대 기타리스트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여기서 3대란 기타 연주 주법의 3대 혁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미 헨드릭스는 뭐 따로 언급 할 필요도 없고 밴 헤일런은 '양손태핑', 잉베이는 '스윕 아르페지오'를 도입해 새로운 연주 스타일을 열었다.라는 정도로 이해하자.] 오죽하면 [[일본]] 본토에선 잉베이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王者(2번 문단의 [[왕자]]. [[프린스]]가 아니다!)라고 일컬을 정도. 확실히 [[일본]]에서 인기는 언터쳐블이다. [[아시아]]권에서나 좋아한다는 [[까]]들의 인식과는 달리 [[북미]], [[남미]], [[유럽]] 등지에서도 수많은 [[팬]]들과 추종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그와 맞먹거나 능가하는 인기와 영향력을 가진 기타리스트들도 여럿 있기에 [[기타리스트]] 인기 투표 순위나 위대한 [[기타리스트]] 목록을 발표할 때면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일이 가끔 있는 정도라 메탈헤드가 아니라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헤비메탈]]이라는 장르에서 잉베이 말름스틴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속주 [[기타리스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뮤지션이 바로 이 사람이니. 하지만 [[록 음악]]의 자유로운 실험 정신을 죽이고 [[기타리스트]]들의 속주 묘기 대행진 서커스로 만들었다는 비판, 기타 연주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 들리고 곡 구조도 항상 뻔한 [[매너리즘]]의 극한이라는 비판, 엘리트 기타리스트들과 그들의 [[비르투오소]]적 면모만을 부각시켜 록의 저항 정신을 함몰시키고 음악의 진입 장벽을 크게 높여 메탈의 대중적 인기를 저하시켜버렸다는 비판들이 제기되어 차차 수많은 [[안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다른 [[기타리스트]]들의 실력을 깎아 내리기만 하는 그의 몇몇 부적절한 언행, [[밴드]]에서 독재자로 활약하며 다른 멤버들의 연주를 억누르며 함부로 대하고 해고한다는 소문, 또 전성기 이후 [[매너리즘]]에 젖어 [[자기복제]]성이 강한 영 좋지 않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낸 등등의 이유 때문에 최근엔 칭찬보단 [[안티]]성 글들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